약속 잘 지키는 고양이

고양이,길고양이,입양,코리안숏헤어,기억,추모 2025년 4월 7일


꼬봉이는 2010년 12월, 한겨울 어느 날 내 품으로 들어왔다.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말해 조금 실망했다.
내가 기대했던 고양이는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털을 지닌,
흔히 말하는 '비싼 품종'의 고양이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허세에 물든 서른 살이었다.
지금, 쉰을 앞둔 나이에 돌이켜 보면 참 철없고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생명에 값을 매길 수 있다고 착각한 그때의 나를 돌아본다.

사실, 꼬봉이에게는 이름도 없었다.
사람들은 “아이고, 너무 이쁜 새끼 고양이네”라며 부를 뿐이었다.
동물병원에서 수의사가 입안을 확인하더니,
“3개월쯤 되었을 것 같네요.” 하고 말해주었다.

이름을 지어주기까지는 한 달 반쯤 걸렸다.
이미 나는 ‘해피’라는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기에,
그의 동생처럼 함께 지내게 될 고양이에게
‘꼬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반려동물 이름을 촌스럽게 지으면 오래 산다는 근거 없는 소문도 믿었다.
그렇게 나의 첫 고양이는, 내 인생에 들어왔다.

꼬봉이는 치즈색 털에 네 발 모두 하얀 장갑을 낀,
코리안 숏헤어 품종의 고양이다.
이름만 다를 뿐, 우리가 흔히 ‘길고양이’라고 부르던 아이.
무슨 상관일까?
순종이든 아니든, 고양이는 고양이다.
그 자체로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다.

꼬봉이는 목동의 어느 아파트 앞에서 울고 있었다.
어미를 잃은 건지, 배가 고팠던 건지.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속에서도 꼬봉이는 울고 있었다.
누군가 동물병원에 위탁해 입양자를 기다리게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다.

아픈 아이들과 함께 좁은 케이지에 갇힌 건강한 새끼 고양이.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결국 내가 데려오기로 했다.
불안정한 보호소의 삶보다는, 차라리 불확실하더라도
내 곁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잘 데려온 것 같다.
14년 동안 꼬봉이는 나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고,
오히려 내가 꼬봉이에게 고마워해야 할 만큼이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함께 집으로 왔다.
나는 차가 없었고, 고양이를 대중교통으로 데려오는 건
여러모로 불편했기 때문이다.
꼬봉이는 케이지 안에서 내내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혹시 죽은 건가?” 싶어
몇 번이고 숨을 확인해야 할 정도였다.

택시가 출발하기 전, 나는 조용히 말했다.
“꼬봉아, 조용히 있자.”

꼬봉이는 마치 그 말을 이해한 것처럼,
그 순간부터 14년을 조용히 지켜주었다.
그 뒤로도 수많은 택시를 함께 탔지만,
꼬봉이는 한 번도 울거나 보챈 적이 없었다.

나는 꼬봉이를 이렇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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