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위해 존재했다

반려동물, 입양기, 추모, 기억 2025년 4월 7일


보통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함께할 동물을 고르는 선택지는 다양하다. 내 눈에 예쁜 아이, 작고 다루기 쉬운 체구, 순한 성격, 혹은 "물지는 않는지" 등 여러 기준이 존재한다.

2008년 해피를 만나기 전, 아버지는 대장암 말기(4기)와 중기 뇌경색을 앓고 계셨다. 우리 가족은 매일 아버지를 돌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내가 직장에 가 있는 동안, 어머니는 집안일과 간호를 병행해야 했고, 어느 날은 아버지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신 끝에,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서야 찾을 수 있었다. 넘어지셔서 머리가 깨지기까지 했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병간호는 당연한 의무라고 여겼던 내 인식을 완전히 뒤흔든 시간이었다. 우리 가족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빠르게 지쳐갔다. 아버지는 5년간 투병하시다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남겨진 우리에겐 슬픔과 공허함, 그리고 지독한 피로만이 남아 있었다. 집은 텅 빈 듯했고,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그 빈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문득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작고 순한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정도만 염두에 두고 친구에게 연락했다. 친구는 마사회에서 매점을 운영 중이었는데, 혹시 강아지를 입양 보낼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일주일쯤 지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손님 중에 한 분이 강아지를 입양 보내고 싶어하는데, 관심 있어?"

그 전화는 마치 소개팅 제안처럼 설레고 기뻤다.

"품종이 어떻게 돼? 몇 살인데?"

질문이 쏟아졌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6개월 된 말티즈야. 남자아이."

말티즈. 순백색의 털을 가진, 몰타가 원산지인 아이. 나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무조건 데려올게. 언제 볼 수 있어?"

약속은 친구가 일하는 곳 근처인 건대입구에서 잡혔다.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졌고, 마음은 이미 건대입구에 가 있었다.

약속 당일, 차를 몰고 건대입구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약속장소로 걸어가니, 친구가 아이를 안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친구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사람이라 그런지, 해피는 불안정하게 안겨 있었고 계속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내가 품에 안자 해피는 바로 편안해졌고, 내 얼굴을 계속 핥기 시작했다.

"형, 맛없어...ㅎㅎ"

나는 웃으며 해피를 품에 안고 친구에게 이발비 3만 원을 건넸다. 한국에서는 보통 무료 분양이 아니라 일정 비용을 받는다. 책임감을 높이기 위한 의미라고 한다.

"원래 주인분이 이름을 해피로 지었대. 그대로 불러줬으면 한대."

나는 그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해피에게도, 전 주인에게도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상황상 아이를 더는 키울 수 없지만, 해피가 좋은 가족을 만나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차로 돌아오자, 해피는 조수석을 거부하고 운전 중인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건대입구에서 집까지 한 시간 남짓. 해피를 품에 안고 조심조심 운전했다. 위험하다는 걸 알지만, 이 아이의 마음을 져버릴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해피와 첫 산책을 했다. 그것이 해피와 나의 첫 만남의 날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해피는 원래 주인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마사회 단골 손님이라면, 평일에도 주말에도 집에 거의 없었을 테니까. 아마 해피는 늘 혼자였을 것이다. 나 역시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혼자였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를 향해 걸어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를 위해 존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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