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의무인가, 선택인가 — 효와 복지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회

효도, 가족, 부양의무, 출산율, 고령화, 복지 2025년 5월 1일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건 당연하지.
그리고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건 선택이야."

이 말,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말이 지금 시대에도 유효한 걸까?

사진: UnsplashJordy Muñoz

우리는 흔히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효'를 말할 때,
그 모든 것을 감정의 문제로 처리해버린다.
하지만 현실은 아주 구체적인 돈의 문제이고,
그 돈은 결국 사회 전체가 세금으로 책임지고 있다.


🔹 부모가 자식을 키우지 못할 때는?

현실에는 아이를 버리는 부모도 있다.
그 아이가 죽으면 사회적 분노가 일지만,
살아서 보육시설에 들어가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 교육, 복지 전부가 세금으로 지원된다.
그 비용은 수천만 원이 아니라 수억 원에 달한다.

결국 부모가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그 책임은 공공의 몫, 곧 국민 전체 세금으로 돌아온다.

🔹 자식이 부모를 돌보지 않을 때는?

노후 빈곤, 치매, 와병 상태의 노인을 자식이 돌보지 않으면
국가가 시설을 마련하고, 요양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역시 대부분 국가 예산, 즉 세금으로 운영된다.

🔹 그렇다면 묻고 싶다.

이런 구조를 알고 있다면,
왜 가족이 서로 돌볼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구조를 만들지 않을까?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세액공제를 대폭 늘리고,
자녀가 부모를 봉양할 때 의료비, 생활비, 간병비 등을
소득공제나 현금 지원으로 인정한다면,
그만큼 공공이 떠안는 복지 비용은 줄어들 것이다.
너무 단순한 이치 아닌가?

하지만 제도는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 지금의 제도는 오히려 역방향으로 움직인다.

부부 간의 자산 이전은 대부분 비과세
부모가 자식에게 집을 주면? 증여세
자식이 부모를 돕는다 해도? 혜택 거의 없음
제도는 ‘부부’는 자발적 계약 공동체로 인정하지만,
‘부모-자식’은 타고난 관계로서,
금전 이동이 발생하면 증여로 간주해 세금부터 매긴다.

결국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중잣대가 제도 안에서도 똑같이 작동하는 셈이다.

🔹 사회는 또 말한다. “효도는 미덕이다.”

그 말이 맞다.
하지만 그렇게 미덕이라며 떠미는 일에,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는다.

부모를 모시지 않으면 배은망덕이라 낙인 찍히고,
형제자매 사이에서는 부모 돌봄 미루기 전쟁이 벌어지며,
부모가 돌아가시면 또다시 유산 상속을 위해 헤쳐 모여한다.
어떤 경우에는 부모를 모시지 않으면서도
주소지만 함께 둬서 위장 동거로 청약 혜택을 받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이 '효도'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다.

🔹 사랑은 감정이다.

하지만 가족은 구조이고 시스템이다.

사진: UnsplashIjaz Rafi

부모와 자식은 서로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말,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돈이 오고 가는 순간,
그 관계는 타인과 타인의 거래로 변질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짜로 부모를 돌보고,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들은
허리가 휘다 못해 부러지고,
결국 무너진다.

그들이 사라지면,
이 사회도 결국 같이 무너질 것이다.

🔹 더 큰 문제는 세금 구조다.

우리는 자꾸 “재벌 세습 막자”며 세제를 강화하지만,
정작 그 법들은 서민들에게 칼날처럼 작동하고 있다.

사진: UnsplashTingey Injury Law Firm

삼성이나 현대 같은 재력가 가문은
법과 인력을 총동원해 증여와 상속을 정교하게 설계하지만,
부모가 가진 아파트 한 채를 자식에게 넘기려 하면
“증여세 중과, 취득세 폭탄”이 따라붙는다.
파리 한 마리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다.
누진세? 있다.
하지만 서민들에게도 그 세율은 여전히 너무 높다.
설명은 어렵고, 행정은 복잡하고,
결국 정보가 없는 이들이 가장 많이 잃는다.

🔹 그리고 정치는?

가족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고,
국가 재정 부담도 줄일 수 있는 구조인데도,
정치권은 이를 외면한다.

사진: UnsplashClark Gu

왜냐하면

표가 안 되기 때문이고,
복잡하기 때문이고,
'효도'라는 감정 프레임으로 덮으면 쉽게 넘어가니까.

🔹 사회는 지금 잔불 속에 타고 있다.

요즘 전국에 산불이 끊이지 않는다.
큰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잔불을 잡지 못하면 다시 타오른다.

사진: UnsplashDenys Argyriou

우리 사회가 지금 그렇다.
크게 보이는 위기만 해결하고,
잔불 같은 불균형,
가족 안의 불공정,
제도 속의 모순을 방치하고 있다.

그러다 결국
모두가 타들어간다.

🔹 프랑스 혁명은 왜 일어났는가?

귀족과 권력층이 부를 독점하고,
세금은 서민에게만 전가됐고,
누구도 시스템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결국 폭발했고, 무너졌다.

이미지 출처 : Les Trois Ordre (National Library of France)

지금 한국 사회는 과연 그때와 얼마나 다를까?


가족이 서로를 책임질 수 있게 제도를 바꿔야 한다.
그게 진짜 복지고,
그게 진짜 사회의 안전망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는 가장 조용히 타들어가는 가족의 잔불 속에서
무너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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