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스핑크스의 수수께끼’가 떠올랐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의 괴물, 스핑크스는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를 지닌 상상 속 존재다.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이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맞히지 못하면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전설을 지녔다.
그 유명한 질문.
“아침에는 네 다리, 점심에는 두 다리, 저녁에는 세 다리로 걷는 것은?”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오이디푸스가 맞힌 이 수수께끼의 정답은 인간이다.
태어난 아이는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 성인이 되면 두 발로 걷고, 노년이 되면 지팡이를 짚고 세 발로 걷는다.
인생의 주기를 따라… 도달하는 ‘중년’
아이일 때는 보호와 보살핌 속에서 자라고,
성인이 되면 자립해서 직업을 갖고, 돈을 벌고, 때로는 결혼해 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쌓인 경력은 삶의 자산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중년’이라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기엔,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회적 위기가 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 중년
우리나라에는 청년을 위한 취업 지원 정책이 존재한다.
노년층 역시 늘어나는 인구에 맞춰 다양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중년을 위한 정책은 거의 없다. 있어도 매우 약하다.
나는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시와 구청 등 여러 곳에 중년층 취업 지원을 알아봤지만 돌아온 말은 “해당 정책은 없습니다”였다. 2025년 지금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취업박람회는 하루 이틀 반짝 열리고 끝나기 일쑤다.
사실 청년도, 노년도 취업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년은 청년보다 낫지도, 노인보다 특별히 유리하지도 않다.
오히려 애매하다. 그래서 더 어렵다.
나이가 많아서, 경력이 많아서…?
중년은 경력이 있어도,
예전처럼 연봉을 받는 자리에 들어가긴 거의 불가능하다.
“경력이 있으면 더 나은 조건 아닌가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류 전형조차 통과하기 어렵다.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왜일까?
인사 담당자들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거나, 경력이 많은 지원자를 꺼린다.
조직의 분위기, 팀의 역학, 권위의 충돌 등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신입에게도 경력을 요구하는 사회
청년들도 취업이 어렵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신입에게조차 경력을 요구하는 채용 구조 때문이다.
경력을 쌓으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경력이 없어서 채용이 안 되는 아이러니.
이 악순환이 취업포기자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럼 중년은?
경력이 있어도 안 되고, 나이 많다고 또 안 되고.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커리어 단절을 겪게 된다.
고용센터, 그리고 제한된 선택지
그래도 뭔가 해야 한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고용센터, ‘고용24’ 같은 시스템을 통해 취업 상담과 지원금 등을 받을 수 있다.
그 자체는 좋은 제도다.

하지만 실제 상담을 받아보면 금세 깨닫게 된다.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고, 결국 몸을 쓰는 단기직이나 단순직 위주로 안내된다.
기존 직장처럼 넥타이 메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종으로 다시 들어가기란 정말 어렵다.
기업들이 중년을 선뜻 채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격증을 따도, 길은 멀다
새로운 자격을 취득해 전환을 시도하려 해도, 시간과 비용이 걸린다.
생활비가 빠듯하면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중년층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노동 강도가 센 일자리로 내몰리게 된다.
이건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샐러리맨에서 자영업자로, 사회 구조의 틈
우리나라의 직업 구조는 단순하다.
샐러리맨 or 자영업자.
회사를 오래 다니다가 퇴사하면, 대부분은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영업으로 내몰린다.
모아둔 돈으로 작은 가게를 열고, 자영업에 뛰어드는 중년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자영업 비율이 높은 것이다.
사오정 시대의 반복
"사오정"이라는 말, 들어봤을 거다.
45세가 되면 정년이라는 뜻.
그 말이 나온 지 벌써 2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40대가 되면 희망퇴직 압박을 받는다.
“회사를 안 나오면 되잖아”
그건 불가능한 말이다.
회사가 나를 버릴 뿐이지, 내가 회사에 버틸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년은 복지의 사각지대다
고용센터에서 상담을 받아보면 알게 된다.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도, 막상 지원해보면 ‘내 일이 아니구나’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만큼 현실은 냉혹하다.

자격과 경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나이’ 앞에서는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그런 나이대는 점점 많아진다.
중년을 위한 법과 제도는 왜 없을까?
나는 생각한다.
정부 차원에서 50~60대에만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을 만들거나,
이 연령대만을 위한 특별한 채용 가산점 제도라도 도입되면 좋겠다고.
그런데 지금은 청년과 노년에만 집중하는 정책뿐이다.
정치적으로 필요하니까.
그래서 중년은 **언제나 ‘비어 있는 칸’**이 된다.
비극이 계속되지 않으려면
하루 이틀 반짝 열리는 취업박람회로는 부족하다.
중년이 다시 일터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정책과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저출산, 은둔청년, 미취업, 자살률이라는 비극의 고리를 절대 끊어낼 수 없다. 오히려 더 깊어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자처럼
그 앞에서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누군가는 “정답은 인간이다”라고 외쳤지만,
이 사회는 여전히 중년을 **‘정답 없는 존재’**처럼 다룬다.
그 결과는… 너무도 자명하다.